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쉬었음’ 청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쉽게 흔하게 나타났던 내용은 청년들이 어렵고 힘든 일은 기피하는 가운데, 원하는 임금 수준은 너무 높다는 이른바 ‘눈높이론’이었다. 이와 같은 눈높이론은 온라인 상에서 ‘쉼대남(쉬었음+이대남)’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청년세대 자체에 대한 조롱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 글은 우선 ‘쉬었음’ 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그 성격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쉬었음 청년층의 현황을 여타 주요 고용지표와의 연관 속에서 파악한 뒤, 성별 및 교육정도에 따른 격차와 그 특성을 알아볼 것이다. 또한 이 문제가 지역의 불균형성과도 깊이 관련있음을 확인해 본다. 쉬었음을 선택한 가장 큰 동기는 ‘적당한 일자리 찾기가 어려움’이었으며, 눈높이론과 달리 쉬었음 청년들의 원하는 일자리의 기준은 높지 않았다. 이는 이들이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수용 가능한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갖춘 일자리 자체가 충분히 주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임을 말해준다. 한국의 노동시장 격차 확대와 디지털 전환 및 인공지능(AI) 확산 등 기술 혁신에 따른 고용 수요의 패턴 변화가 쉬었음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정부와 주요 연구기관들이 내놓고 있는 주류적 해법 소개 및 그 한계 지점이 이어진다. 특히 노동시장의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노동시장 내에서의 적응과 매칭 등 개인적 수준에서의 접근으로만 논의를 축소시키는 주장, 그리고 노동유연화 확대를 통해 고용의 총량을 늘리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주장들에 대해 주로 다룰 것이다. 주류적 해법에 대한 비판은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에 대한 비판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이후 한국 사회에서의 소득 불평등 및 불안정 노동의 확산 국면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가운데, 이와 같은 변화가 미치는 악영향이 성별·기업 규모·고용 형태 등의 분할에 의해 비대칭적으로 나타남도 확인한다.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불평등 해소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저임금 및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 노동 부문에서의 노동조합 조직 확대, 기업별 교섭 구조를 넘어선 교섭 범위의 확장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쉬었음 청년 현상에 대한 공적 논의 구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글을 마친다.
빛의 혁명 후 벌써 2년이 지나갑니다. 빛의 혁명을 함께했던 많은 이들이 과거 촛불혁명과 다르지 않은 결과에 실망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노동조합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빛의 혁명의 주역 중의 주역이었습니다. 이제 노동조합은 이 빛의 혁명을 성공한 혁명으로 보는지, 미완의 혁명으로 보는지, 실패한 혁명으로 보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민주당의 득세를 성공으로 본다면 성공한 혁명이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럼, 노동조합은 대통령의 뜻인 중도 보수에 만족하며 조합 활동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긴급조정권’ 발동 운운하며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을 짓밟으려고 기도했던 것에 이의를 제기하면 안 됩니다. 중대재해를 범한 자를 처벌하지 않아도 눈감아야 합니다. 노란봉투법을 자의적으로 운영하며 하청노동자의 교섭권을 침해해도 모른 척해야 합니다.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계속 보장하지 않아도 남의 일로 치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아님>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빛의 혁명을 성공한 혁명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맞습니다. 노조가 중심이 되어 응원봉을 들고 투쟁한 그 빛의 혁명은 미완의 혁명, 아니 실패한 혁명입니다. 이제 노동조합은 이 실패의 원인 찾기에 나서야 합니다. ...